당신들의 '참여'

Posted 2007.03.26 10:09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매도할 수도, 누군가에게 매도당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를 선동할 수도, 누군가에게 선동당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결코 나치즘이 장악하고 있던 독일의 이야기도, 안보국 요원들이 도처에 퍼져있던 197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여론의 현 주소이다. 

본래 여론은 시민혁명 전 프랑스의 한 관리가 부르주아들로 부터 자금을 얻기 위해 왕족이 아닌 그들에게도 약간의 정치 참여권을 부여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현대의 절대적 가치 기준인 ‘돈’을 소유한 그들이었으나 당시만 해도 부르주아 계층은 다소 천한 계급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이익에 상응한다거나 옳다고 생각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이 적극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형태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여론은 과거와 그것과 다르다.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현대의 민주주의는 과거 아테네의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겪었던 여러 부작용(간접 선거, 공개투표, 독재정권, 무력제압 등)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람들의 염원은 ‘참여’라는 글자를 갈구하게 했다. 참여는 ‘나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길’이었으며, ‘잘 된 민주주의의 척도’로 비추어졌다.

 ‘참여정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 역시 인터넷 ‘노사모’를 통해 당선되었고 국정을 시작한 이래로도 늘 인터넷 여론의 영향을 받아오고 있다. 이것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분명 이로운 작용을 했다.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수치화 되어 보여 지는 결과는 ‘나의 의견이 반영된 정확한 결과’라는 기분을 갖게 했으며 그것이 나의 의견과 다르던 같던 간에 결국 ‘다수의 의견을 표명하는 명약관화한 자료’로 보여 졌으므로 이를 부정하려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속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재작년 우리나라와 일본이 한참 독도 영유권 문제로 다툴 때 CNN.COM 에서 이루어졌던 설문조사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독도는 한국 땅이다’ vs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두 가지 선택항이 있었던 그 설문은 일본 측의 압도적 우세였다. 90% 이상의 세계인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 네티즌들이 그 사실을 무시했을 리 만무하다.

당연히 화가난 한국의 네티즌들은 포털 사이트나 인기 사이트, 인기 카페, 클럽 등을 통해 투표 참여하기 운동을 했고, 당연히 그 참여율은 엄청났다. 하지만 총 투표수의 대부분이 한국인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문 결과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사건은 소위 우리가 참여하고 있다는 그 각종 설문, 통계 조사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실제로 국내에서 조차 포털사이트가 여론을 조작한다는 주장이 들끓고 있다. 이에 따라 몇몇 인기 포털 사이트는 뉴스 섹션을 대폭 축소하는 일도 있었다.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변화한 것이 분명 긍정적인 것임에는 확실한 것처럼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은 분명 잘 된 일이다. 그러나 논의 하고자 하는 사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사람들도 모두 참여하는, (인터넷의 익명성 덕분에 소위 ‘초딩’들도 여론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논의 자체에 의미가 없는 그런 한심한 글들조차도 ‘여론’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에 포장되어 우리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하였으니. ‘지식과 판단력을 갖춘 진정한 public’이 아닌 부피만 큰 집단인 ‘공중’ (여기서 ‘공중’은 공중 화장실, 공중도덕, 공중전화 등의 단어에서 통용되는 ‘공중’이라 보면 되겠다.)에 의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뒤바뀌는 정치인들의 줏대 없는 입놀림도 결국 우리 ‘참여’로 부터 나온게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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