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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08 민족주의의 재정립
  2. 2007.03.26 당신들의 '참여' (4)
  3. 2007.03.23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서, (2)
  4. 2007.03.15 당신,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2)
  5. 2007.03.08 이기주의자의 영예로운 새 이름. (11)
  6. 2007.02.12 2월 13일 ~ 2월 16일 (6)
  7. 2007.02.11 못된 버릇 재발!!!
  8. 2007.02.09 현재 시각 3시 42분 (2)
  9. 2007.02.08 현재 시각 3시 21분

민족주의의 재정립

Posted 2007.04.08 18:27

  '한 방울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혼혈아는 흑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백인과 흑인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제시카 알바나 윌 스미스를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 법칙은 '돈'이라는 문제로부터 뻗어 나왔다. 그 옛날 봉건제도가 자리 잡고 있을 무렵, 서양에서는 흑인노예의 거래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노예=재산'이었던 그 시대에 백인인 주인과 흑인 노예 사이의 자식은 흑인으로 간주되어 노예시장에 팔렸다. 조부모, 부모가 모두 백인인 한 여성이 루이지애나 주로부터 조상 중에 흑인이 있다는 이유로 1/32가 흑인이므로, 백인이 아닌 흑인이라는 판정을 받고 노예로 팔려나간 사례는 지금 들어도 놀랍다.


  그러나 우리나라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본 혼혈인을 온전히 우리 ‘한국인’이라고 여긴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한국 땅에서 태어나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옷을 먹고, 한글을 배우고 자랐다 하여도 우리는 그들의 파란 눈, 곱슬머리, 짙은 쌍꺼풀에서 마음 속 깊이 거부감을 느낀다. 까만 피부에 곱슬머리를 가졌지만 김치를 좋아하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순이를 보고도 우리는 그녀를 한국인으로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 무엇이 이들, 혼혈인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여기고 그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들은 어디에도 쉽게 속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인종 차별 문제에 있어서도 백인 편을 들 수도, 흑인 편을 들 수도, 동양인 편을 들 수도 없는 어중간한 신세이다. 보편적으로 인류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이렇게 단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나마도 황인종과 흑인종을 한 데 묶어 백인종과 유색인종이라는 대립된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데, 혼혈인들은 어느 편에도 마땅히 낄 곳이 없다. 몇 해 전 한 연예인이 오랫동안 부정해오던 혼혈아 여부를 인정하며 시끄러웠던 기자 회견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일은 이 땅의 혼혈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해 준 사건이었다.

  우리가 이토록 혼혈인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한민족’이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설이면, 방송사에서는 ‘한민족 고유의 명절 설날입니다’류의 멘트를 들을 수 있고, 초등학생들 또한 ‘한민족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글짓기’라는 대회에 의무적으로 참가해 ‘우리 민족은 하나다’라는 기저를 바탕으로 한 글을 훈련병 세뇌교육 받듯 쓰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민족’이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따져본다면 그것이 결코 오랜 옛날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족이란 개념은 전쟁을 위해 공동체를 하나로 모아야 할 때, 또는 외부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결속력을 다져야 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한 민족이라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민족’이란 단어는 결코 ‘피’의 계보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민족’이라는 개념은 일제 침략기 내부의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방안으로 만들어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생김새가 좀 다르다고 우리 민족 이외의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과거 고루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유태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던 나치즘도 잘 생각해 보면 결국은 피의 문제가 아니다. 히틀러의 정치적 욕심에서 비롯된 망령된 처사가 ‘민족주의’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합리화 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같은 피’를 전제로 하는 민족주의는 이미 퇴색한지 오래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어떠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목적에서 생긴 것이라면 새롭게 변화한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민족주의’의 의미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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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참여'

Posted 2007.03.26 10:09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매도할 수도, 누군가에게 매도당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를 선동할 수도, 누군가에게 선동당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결코 나치즘이 장악하고 있던 독일의 이야기도, 안보국 요원들이 도처에 퍼져있던 197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여론의 현 주소이다. 

본래 여론은 시민혁명 전 프랑스의 한 관리가 부르주아들로 부터 자금을 얻기 위해 왕족이 아닌 그들에게도 약간의 정치 참여권을 부여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현대의 절대적 가치 기준인 ‘돈’을 소유한 그들이었으나 당시만 해도 부르주아 계층은 다소 천한 계급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이익에 상응한다거나 옳다고 생각되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이 적극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형태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여론은 과거와 그것과 다르다.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현대의 민주주의는 과거 아테네의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겪었던 여러 부작용(간접 선거, 공개투표, 독재정권, 무력제압 등)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람들의 염원은 ‘참여’라는 글자를 갈구하게 했다. 참여는 ‘나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길’이었으며, ‘잘 된 민주주의의 척도’로 비추어졌다.

 ‘참여정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 역시 인터넷 ‘노사모’를 통해 당선되었고 국정을 시작한 이래로도 늘 인터넷 여론의 영향을 받아오고 있다. 이것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분명 이로운 작용을 했다.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수치화 되어 보여 지는 결과는 ‘나의 의견이 반영된 정확한 결과’라는 기분을 갖게 했으며 그것이 나의 의견과 다르던 같던 간에 결국 ‘다수의 의견을 표명하는 명약관화한 자료’로 보여 졌으므로 이를 부정하려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속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재작년 우리나라와 일본이 한참 독도 영유권 문제로 다툴 때 CNN.COM 에서 이루어졌던 설문조사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독도는 한국 땅이다’ vs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두 가지 선택항이 있었던 그 설문은 일본 측의 압도적 우세였다. 90% 이상의 세계인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 네티즌들이 그 사실을 무시했을 리 만무하다.

당연히 화가난 한국의 네티즌들은 포털 사이트나 인기 사이트, 인기 카페, 클럽 등을 통해 투표 참여하기 운동을 했고, 당연히 그 참여율은 엄청났다. 하지만 총 투표수의 대부분이 한국인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문 결과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사건은 소위 우리가 참여하고 있다는 그 각종 설문, 통계 조사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실제로 국내에서 조차 포털사이트가 여론을 조작한다는 주장이 들끓고 있다. 이에 따라 몇몇 인기 포털 사이트는 뉴스 섹션을 대폭 축소하는 일도 있었다.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변화한 것이 분명 긍정적인 것임에는 확실한 것처럼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은 분명 잘 된 일이다. 그러나 논의 하고자 하는 사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사람들도 모두 참여하는, (인터넷의 익명성 덕분에 소위 ‘초딩’들도 여론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논의 자체에 의미가 없는 그런 한심한 글들조차도 ‘여론’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에 포장되어 우리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하였으니. ‘지식과 판단력을 갖춘 진정한 public’이 아닌 부피만 큰 집단인 ‘공중’ (여기서 ‘공중’은 공중 화장실, 공중도덕, 공중전화 등의 단어에서 통용되는 ‘공중’이라 보면 되겠다.)에 의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뒤바뀌는 정치인들의 줏대 없는 입놀림도 결국 우리 ‘참여’로 부터 나온게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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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서,

Posted 2007.03.23 12:29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킨을 바꿨다.
물론 예전 것이 더 맘에 들긴 하지만
이제 좀 질리기도 했고
예전건 인터페이스가 좀 불편한 편이라.

피씨방이라 티스토리가 너무 빠르다!
우리집은 정말 속터지게 느린데ㅠ

역시 6년된 고물컴퓨터는 바꿔야하는건가. 하하

요즘은 방어기제로 '도피''합리화'를 많이 쓰고있다.
일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놀러나가고 싶고
더 미루게 된다. 어떡하지.

방학동안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아, 그리고 오늘 영어회화 한단계 패스했다.
댄은 다음코스를 통과하려면 두달이 걸릴거랬는데

한달만에 패스하는 기염을 토해보이겠어!!


+ 그림은 그냥 예쁘라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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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한 남자가 벌레로 변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속 가련한 주인공 그레고르의 이야기 이다. 인간 존재의 허무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 이 소설에서 내가 찾아낸 것은 ‘인간은 결국 상호 협력 가능할 때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흉측한 벌레로 변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레고르는 은퇴한 아버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 17살 난 어린 여동생을 돌보던 가장이었다. 그는 바이올린을 하고 싶어 하는 여동생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정신없이 뛰어야 하는 고된 세일즈 일에도 불평한번 없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손수 집을 마련할 만큼 가족에 헌신적이었다. 그는 그의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황당한 사건의 결말은 이러하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지만 점점 소외되어 가던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 바짝 말라 죽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들 안에서 없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기뻐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가 경제능력을 상실하고 더 이상 가족을 돌볼 수 없게 된 순간 가족들은 이미  그를 서서히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가 어서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지만, 사회에는 이와 같은 맥락의 사건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그레고르를 중세 봉건 시대의 성주라고 생각해보자. 왕을 위해 헌신하는 그레고르는 왕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측근의 배신으로 습격을 받은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고 한낱 거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은 한때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누구보다 자신을 생각해주던 그를 가엾이 여겨 그의 여생을 돌보아 주기로 한다. 처음 얼마간 왕은  그의 불행을 모두 털어내 주려는 듯 극진히 대해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왕은 그에게 베푸는 것이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그가 먹는 음식이 아깝고, 그가 입는 옷이 아깝다. 급기야 그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며,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그가 진절머리 나게 보기 싫어진다. 얼마 후 왕은 사람을 시켜 그를 죽인다.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가상의 일화는 현대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레고르가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면 왕은 자신의 군사로 그레고르의 신변을 지켜주고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강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강국에 의해 타국의 위협으로부터 미연에 보호받는 것이 그러하다. 곧, 이러한 'Give & Take'적 공식이 성립되어야 사회적 협력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가족들의 방치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단지 ‘그가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어서’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남은 가족들은 그가 없어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제 그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어진 것이다. 가족들이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순간 그는 이미 그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사회 협력에 있어 위에서 언급한 ‘Give&Take’적 관계의 형성에 앞서 요구되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냐 아니냐’의 여부이다.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얻으며, 정신적 육체적 평안을 누린다. 바로 이러한 ‘서로에 대한 서로의 필요’라는 메커니즘이 우리 사회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국가에 의한 보호의 대가로 세금을 납부하며, 취직하고자 하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영어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한다. 무관심 속에 죽어간 가련한 그레고르처럼 영원히 방치당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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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이기심'이란 키워드를 치고 엔터 키를 누르면 관련 검색어에 '미국의 이기심'이란 링크가 뜬다. 왜 하필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일까? 사실 이런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가족에 관해서도 ‘내 가족’ 이라는 말보다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한국인에게 미국식의 ‘my family'는 정서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부터 미국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국가라는 걸 눈치 채고 만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서로 다른 행동기반을 가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감으로 이어진다. 공공의 이익을 미덕으로 여기며 ‘공동체적 삶’이라는 모토에 익숙한 우리는 사이좋은 사람‘들’ 싸이월드에서,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은 ‘my’ space.com에서 자신의 공간을 만든다. 사이트 명에서 조차 국민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기심의 표출에는 기본적으로 그 행위의 주체가 ‘상대적 강자’라는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 상대적으로 보나 절대적으로 보나 ‘최강자’인 미국이 군림하고 있다. 서류상으로만 아닐 뿐이지 ‘한국의 미국의 경제 식민지’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올 정도로 미국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나스닥 지수의 하락은 우리 서민경제의 폭락을 의미하고 ‘지원군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결코 강제적으로 들리지 않는 제안은 우리 젊은이들의 즉각적인 파견을 예고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같은 것이냐에 대해 개념정의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공중의 보편적인 생각을 알아볼 수 있다는 위키피디아에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정의에 대해 각각 검색을 해보았다. 미국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기주의를 뜻하는 egoism은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조차도 결국은 개인적인 관심이 동기가 되어 행해진 것이라는 관점’, ‘개인적 흥미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사회적 관심에는 무관심한 개인’등으로 정의된다. 한편 개인주의를 뜻하는 ‘individualism’은 ‘도덕, 정치, 사회학적으로 인간의 독립과 개인의 자기신뢰,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와, 개인주의는 전체주의와 반대적 속성을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조차 결국은 개인적인 관심이 동기가 되어 행해진 것’이라는 정의의 한 예로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이 행동은 분명 도덕적으로 보이는 행동이지만 사실은 이러한 행동을 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다’라는 평가와 자리를 비켜주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자신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함으로써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런 비유를 두고 속된말로 ‘꼬였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에 와서는 이런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멀쩡히 있는 착한 사람도 이상한 사람을 만드는 이 꼬인 사상은 이제 케이블 TV와 헐리웃 영화, 인터넷 광케이블을 타고 우리에게도 침투해 ‘이기주의자는 똑똑한 욕심쟁이’쯤으로 여기는 쿨한 사회로 만들었다. 드라마속의 악녀는 더 이상 그냥 ‘못된 년’이 아닌 ‘매력녀’이다. 사람들은 사회라는 거센 풍파에 맞서 나하나 살겠다고 남의 불행이나 기분쯤은 털끝만치도 생각지 않는 ‘그’혹은 ‘그녀’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 뜻대로 일이 되어갈 때는 자신은 못하는 것을 해내는 그들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동정심에 사로잡힌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기적인 그들을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닌 ‘우리’ 그 자체의 일부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들 인간의 이기심이 ‘경쟁’을 낳았고 경쟁이 야기하는 위협에 대비하여 상호간의 합의하에 국가라는 체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법’이라는 것이 이기심의 표출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과거 이기심은 무조건적으로 배제하려던 것에 비해 적정한 범위 내에서의 이기심 표출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 윤활유가 되어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그토록 이기적이라 믿었던 미국의 사후재산 사회 환원율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는 것. 이런 행위도 사회로부터 칭찬 받고 싶고, 선행을 함으로써 심리적 만족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되는 걸까? 아무렴 어떤가? 이런 이기심이라면 온 국민이 모두 이기주의자래도 상관  없을 것 같다. 태동하는 新에고이스트들에게 고한다. ‘베품의 미덕이 담긴 에고이즘을 행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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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 2월 16일

Posted 2007.02.12 21:45
발렌타인 데이를 피해

제주도로 도피합니다!

커.플.지.옥 솔.로.천.국!


- 실은 지옥이라도 커플이 나을것 같아요 -_ ㅜ


동생 남친 줄 쵸콜렛 제가 만드는거 도와줬어요,
내가 왜! 도대체 왜!
그들의 염장질에 동참해야하는가!

어서 가서 짐이나 싸야겠네요-
뱅기를 새벽 일찍 타서 얼릉 준비해야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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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버릇 재발!!!

Posted 2007.02.11 00:33
아휴,
또다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역시 불안하다.
뭔가 안정적이지 못한거다.

커피빈 때문일지도ㅠ
손톱을 못기르게 하니까!
손톱 못기르는게 세상에서
제일 싫구나-_ -;;

어제는 강남역에서 충동적으로
네일아트용 스톤을 두가지 구매했다-

지난 여름 매진되어서 못샀던 흰색 스톤과
예뻐보이는 퍼플색 스톤.

그러니까 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손톱을 길러서 네일아트를 해야겠다;

빨리 영어나 언어 과외를 구해봐야겠어;

쌓여있는 손톱을 보자니 뭔가 울컥한다.
아 이건 아닌데. 내가 왜 ㅠ
요즘은 정말 내 맘하고 절대 반대인 일만
골라서 한다. 이러면 안되는거 알면서
그렇게 한다. 바보도 아니고! 나이가 몇갠데!

잘되어가는 듯 했는데 뭔가 망쳐지고 있는듯한
2007년 토할것 같다.

갈수록 탄력없어지는 피부도,
빠질 기미가 안보이는 살들도 ㅠ

완전 글루미모드.
휴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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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3시 42분

Posted 2007.02.09 03:41
역시 오늘도 용인에 위치한 모비스연수원 휴게실의 컴퓨터입니다!
어제는 다들 일찍부터 자더니 오늘은 그나마 다들 늦게까지 회식하고
노래방에서 놀다가 들어와서 그런지 휴게실에 저말고도 사람이 많았습니다만
지금은 역시 저 혼자 뿐이군요-_ - 사람들이 너무 일찍 자는 것 같아요 ㅎㅎ
(아닙니까-_ -;;) 여튼,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 하루종일 듣느라 몸이
지쳤는데 내일 또 6시 반에 일어나야한다는군요; (저는 특히 수치부분을 뭐하러
알려주나 했습니다. 외울것도 아닌데;) 아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늦게 자니
내일이 무척이나 걱정되는근영 ㅋㅋ 이제 저는 결정을 내릴 때가 왔습니다.
내일 그냥 집에가서 쉴것인지 아니면 내일 또 대학부 연합 수련회를
따라갈것인지-_ - 솔직히 무리 같습니다; 아무래도 잠부터 우선 좀 자고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그런데 여전히 머리가 다 마르지 않았네요-
오늘도 그가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역시 문제는 그는 모른다는거.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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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3시 21분

Posted 2007.02.08 03:34
지금 여기는 모비스 용인 연수원입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인지라 많이 춥네요.

네이트온을 깔아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하였지만
역시나 방화벽이 막혀있어 로그인할 재간이 없습니다.

제가 앉아있는 이곳은 연수원 5층 숙소동 옆에 자리한
휴게실에 있는 피씨입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드라이어도 없고 휴대폰 충전기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바닥을 쳐서 (전 요즘 바닥을 친단 말을 쓸일이 너무 잦아 걱정입니다.)
오늘 통신원 임명식때 받았던 16핀 USB케이블에 휴대폰을
연결해 젖은 머리가 마르는 동안 충전이나 할 요량으로
앉은 것이 어느덧 3시반이 다 되어가는군요.

내일 6시 20분까지 기상해서 밥먹고 아산공장으로 이동해야하는데
이제자서 어떻게 일어날지 까마득하네요.
어서 자야겠어요,

(이상 불이 다 꺼진 추운 휴게실에서 손에 호호 입김불어가며 블로그질하던 레이라였습니다)

+ 덧
이런말투는 참 오랜만이네요,
그리고 사랑하는 닉혼 디오공이를 가져올걸 그랬어요.
오랜만에 셔터질좀 하는건데 아쉽근영.

++
아, 그리고 오늘 고등학교 졸업식 못가서
너무너무 미안한 동생씨. 그래도 녀석 착해서
보고싶다고 문자보냅디다. 아침에 제대로 인사
못하고 보내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아까 교육중이라
답장을 안한게 이제야 생각났네요;
지금이라도 답장해야겠어요.

+++
이제 진짜로 안녕!
굿나잇 :D 이라기 보단
굿 da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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