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남자가 벌레로 변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속 가련한 주인공 그레고르의 이야기 이다. 인간 존재의 허무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 이 소설에서 내가 찾아낸 것은 ‘인간은 결국 상호 협력 가능할 때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흉측한 벌레로 변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레고르는 은퇴한 아버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 17살 난 어린 여동생을 돌보던 가장이었다. 그는 바이올린을 하고 싶어 하는 여동생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정신없이 뛰어야 하는 고된 세일즈 일에도 불평한번 없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손수 집을 마련할 만큼 가족에 헌신적이었다. 그는 그의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황당한 사건의 결말은 이러하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지만 점점 소외되어 가던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 바짝 말라 죽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들 안에서 없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기뻐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가 경제능력을 상실하고 더 이상 가족을 돌볼 수 없게 된 순간 가족들은 이미  그를 서서히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가 어서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지만, 사회에는 이와 같은 맥락의 사건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그레고르를 중세 봉건 시대의 성주라고 생각해보자. 왕을 위해 헌신하는 그레고르는 왕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측근의 배신으로 습격을 받은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고 한낱 거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은 한때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누구보다 자신을 생각해주던 그를 가엾이 여겨 그의 여생을 돌보아 주기로 한다. 처음 얼마간 왕은  그의 불행을 모두 털어내 주려는 듯 극진히 대해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왕은 그에게 베푸는 것이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그가 먹는 음식이 아깝고, 그가 입는 옷이 아깝다. 급기야 그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며,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그가 진절머리 나게 보기 싫어진다. 얼마 후 왕은 사람을 시켜 그를 죽인다.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가상의 일화는 현대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레고르가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면 왕은 자신의 군사로 그레고르의 신변을 지켜주고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강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강국에 의해 타국의 위협으로부터 미연에 보호받는 것이 그러하다. 곧, 이러한 'Give & Take'적 공식이 성립되어야 사회적 협력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가족들의 방치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단지 ‘그가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어서’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남은 가족들은 그가 없어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제 그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어진 것이다. 가족들이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순간 그는 이미 그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사회 협력에 있어 위에서 언급한 ‘Give&Take’적 관계의 형성에 앞서 요구되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냐 아니냐’의 여부이다.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얻으며, 정신적 육체적 평안을 누린다. 바로 이러한 ‘서로에 대한 서로의 필요’라는 메커니즘이 우리 사회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국가에 의한 보호의 대가로 세금을 납부하며, 취직하고자 하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영어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한다. 무관심 속에 죽어간 가련한 그레고르처럼 영원히 방치당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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